
이 밴드의 이름을 볼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대학 시절 피자를 먹을 때마다 일반적인 핫소스로는 자기 입맛에 부족하다면서 하바네로 소스를 항상 갖고 다니던 미친자 이야기가 있고(지금은 어찌 살려나), 둘째는 과연 소스가 어느 정도 매워야 그냥 핫소스고 얼마나 더 매워야 ‘엑스트라’ 핫소스가 되는지 기준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뭐가 됐든 음악과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니까 이쯤에서 넘어가고.
Peaceville은 메탈 레이블이기는 하지만 사실 특정 스타일에 국한해서 앨범들을 내놓는 곳은 아니고 이런저런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는 곳인데, 그래도 이 레이블에 대한 인상은 어쨌든 둠이나 둠-데스에 강점이 있는 레이블이라는 게 나도 그렇거니와 90년대 음악잡지를 통해 메탈을 공부한 이들의 대개의 생각이지 싶은데(일단 Paradise Lost, My Dying Bride, Anathema만으로도 거기엔 꽤 근거가 있어 보인다) 정작 레이블 카탈로그의 시작은 거의 하드코어나 크러스트코어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Dan Lilker가 중심이 된 이 그라인드/크러스트 프로젝트의 앨범이 Peaceville에서 나왔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실 본격 그라인드/크러스트라기보다는 꽤 이색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Howie의 보컬이나 ‘Lookout for the Cheeba Man’에서 익살스런 레게풍과 함께 드러나는 하드코어(굳이 비교하자면 Agnostic Front 스타일이 아닐까)도 그렇고, Dan Lilker의 작품 아니랠까봐 Nuclear Assault 스피드업처럼 느껴지는 ‘Passive Terrorism’, 대체 왜 했는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무척 자극적으로 간추린 듯한 Lynyrd Skynyrd와 Led Zeppelin의 커버, 설마하니 정말로 비트박스를 선보이는 ‘Caucasian Beat Box’ 등 들으면서 일단 낄낄대기에는 충분한 넘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Extreme Hatred’ 같은 소수의 곡을 제외하면 정말 유머로만 승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문제이지만(그런 의미에서 ‘잊혀진 그라인드코어 명반’이라는 레이블측 광고문구는 사실 사기에 가깝다) 20여분의 짧은 시간, 두어 번 즐겁게 듣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Dan Lilker가 베이스나 기타가 아니라 무려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도 나름의 웃음 포인트겠다. 하지만 어쨌든 듣다 보면 아니 웃기는 것도 좋지만 좀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로서는 딱 거기까지.
[Peaceville, 1989]



